Chapter 8
8.2. 사교육 경쟁은 언제 시작되는가
교육비와 교육경쟁은 출산 이후에야 나타나는 비용이 아니라, 출산을 결정하기 전부터 부모가 예상하는 장기 위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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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경쟁은 언제 시작되는가
사교육을 대학입시의 문제로만 생각하면 고등학교가 가장 중요한 무대처럼 보인다. 그러나 부모가 체감하는 교육비 부담은 훨씬 일찍 시작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 수학, 예체능, 돌봄과 학습이 뒤섞인 사교육이 일상으로 들어오면, 교육비는 “입시 직전의 특별한 비용”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동안 계속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된다.
학교급별 사교육비와 참여율
CSV 다운로드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의 전체학생 기준 월평균 사교육비와 참여율을 함께 제시한다. 사교육 경쟁이 입시 직전의 문제가 아니라 초등 단계부터 시작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그림이다.
학교급별 자료를 보면 초등학교의 사교육 참여율이 매우 높다는 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2025년 기준 초등학생 사교육 참여율은 84%대이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보다 높다. 고등학교의 1인당 비용이 높게 나타나는 해가 많지만, 참여율의 생활화는 초등 단계에서 이미 시작된다. 이는 부모가 “나중에 입시 때만 대응하면 된다”고 느끼기 어렵다는 뜻이다.
초등 사교육은 입시 과목만의 문제가 아니다. 맞벌이 가구의 방과후 시간 공백, 돌봄과 학습을 함께 해결하려는 필요, 영어와 수학을 일찍 시작해야 한다는 불안, 예체능과 취미 교육까지 겹친다. 따라서 사교육비를 줄이려면 고등학교 입시제도만 손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초등 저학년 이후의 돌봄 시간, 방과후학교의 질, 지역별 프로그램 접근성, 부모의 퇴근시간과 아이의 하교시간 사이의 간극을 함께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고등학교 사교육을 부차적인 문제로 볼 수는 없다. 고등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코로나19 시기의 충격을 지나 2020년 61.6%에서 2024년 67.3%까지 올라갔다. 같은 기간 고등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도 39.6만원에서 52.0만원으로 커졌다. 다만 2025년에는 참여율이 63.0%로 내려갔고 전체학생 기준 월평균 사교육비도 49.9만원으로 낮아졌다. 따라서 “최근 급증”이라는 표현은 2020년 이후 2024년까지의 회복과 상승을 가리키는 것으로 제한해서 읽어야 한다. 최신 조사에서는 참여 여부는 줄었지만, 사교육에 참여한 고등학생의 월평균 비용은 79.3만원으로 오히려 더 높아졌다. 사교육 시장이 넓어졌다기보다 참여하는 학생에게 비용이 더 집중되는 방향도 함께 나타나는 것이다.
고등학생 사교육 참여율을 끌어올린 과목과 유형
CSV 다운로드고등학교만 분리해 전체 참여율과 일반교과, 주요 과목, 온라인 강좌, 진로·진학 학습상담 참여율을 비교했다. 2020년 코로나19 시기 이후 2024년까지의 상승과 2025년의 하락을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
고등학교 사교육 참여율이 2024년까지 오른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니다. 첫째, 일반교과 사교육의 저변이 넓어졌다. 수학과 영어는 여전히 고등학교 사교육의 중심이고, 국어와 사회·과학도 2019년 이후 참여율이 뚜렷하게 높아졌다. 이는 수능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신, 수능, 학생부, 대학별 전형이 한 학생의 시간표 안에서 동시에 작동한다는 뜻이다. 부모와 학생은 “어느 하나만 잘하면 된다”고 느끼기보다 “어느 하나도 놓치면 안 된다”고 느낀다.
둘째, 입시제도 변화와 불확실성이 사교육 수요를 자극했다. 2023년에는 수능 킬러문항 논란과 사교육 경감대책이 동시에 나왔고,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도 확정되었다. 정부는 이런 변화가 사교육을 줄이는 방향이라고 설명했지만, 제도가 바뀌는 시기에는 오히려 학부모가 불안을 크게 느낄 수 있다. 특히 고등학생에게 입시제도 변화는 먼 미래의 제도 설명이 아니라 당장 어떤 과목을 얼마나 준비해야 하는지의 문제로 다가온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사교육은 지식 보충보다 위험 회피 수단에 가까워진다.
셋째, 온라인 강좌와 진로·진학 학습상담이 사교육의 문턱을 낮추었다. 예전에는 학원에 다니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구분이 비교적 선명했지만, 유료인터넷 강좌가 확대되면 사교육 참여는 더 작은 단위로 쪼개진다. 국어는 인터넷 강의로, 수학은 학원으로, 학생부와 진학 전략은 상담으로 준비하는 식이다. 이 경우 참여율은 단순히 학원 수강생의 증가가 아니라 사교육 포트폴리오의 세분화를 반영한다.
넷째, 의대 증원과 상위권 경쟁의 재배치도 고등학생 사교육을 자극할 수 있다. 2025학년도 의대 정원 확대는 지역 의료체계라는 정책 목표를 갖지만, 입시시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상위권 학생의 선택지와 기대를 바꾸는 신호로 읽힌다. 의대 정원이 늘면 합격 가능성이 넓어진다고 느끼는 학생이 생기고, 동시에 상위권 경쟁에 더 오래 머무르려는 유인이 커진다. 이 효과는 전체 고등학생에게 똑같이 나타나지는 않지만, 고비용 사교육과 참여학생 1인당 비용 상승을 설명하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결국 고등학교 사교육 증가는 “고3이 되면 학원을 많이 간다”는 익숙한 말보다 더 복잡하다. 공교육 안에서 평가와 진학의 경로가 충분히 예측 가능하지 않으면, 가정은 불확실성을 돈으로 줄이려 한다. 그래서 고등학생 사교육을 줄이려면 특정 문항을 없애거나 특정 과목을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입제도의 예측 가능성, 고교 내 진학지도 역량, 학교 수업과 평가의 신뢰, 중상위권 학생이 사교육 없이도 자신의 위치와 준비 전략을 알 수 있는 공적 상담 체계가 함께 필요하다.
이 점은 저출산 정책에도 중요하다. 부모가 둘째를 고민할 때 떠올리는 것은 대학입시 비용만이 아니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 매일의 시간표를 어떻게 채울 것인지, 방학에는 누가 돌볼 것인지, 학원을 보내지 않으면 아이가 뒤처진다고 느끼는 분위기를 어떻게 견딜 것인지가 함께 떠오른다. 교육정책과 돌봄정책이 분리되어 있으면 이 부담은 가정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교육비 경감은 단순한 학원비 대책이 아니라 초등 생활시간 정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