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2.5. 저출산은 한국만의 문제인가

전국 인구 감소는 모든 지역이 동시에 줄어든다는 뜻이 아니다. 같은 20년 동안에도 성장축과 축소축이 함께 만들어진다.

저출산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저출산을 한국 사회의 특수한 실패로만 읽으면 중요한 맥락을 놓친다. 출산율 하락은 일본, 대만, 싱가포르에서도 오래전부터 진행되었고, 유럽도 대체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같은 저출산이라도 작동 방식은 다르다. 동아시아에서는 출산이 결혼과 강하게 묶인 상태에서 결혼 자체가 늦어지고 줄어드는 반면, 유럽에서는 비혼 출산과 이민자 출산이 일정 부분 출생 감소를 완충한다.

아시아 주요국 합계출산율 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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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World Bank SP.DYN.TFRT.IN; Taiwan Gender Indicators, Ministry of the Interior administrative data

한국·일본·싱가포르는 World Bank, 대만은 공식 성별지표 플랫폼의 총생육률을 1,000분율에서 여성 1명당 출생아 수로 환산했다.

아시아 주요국을 보면 한국의 하락 폭이 가장 가파르지만 방향은 고립되어 있지 않다. 일본은 이미 2000년대 초부터 낮은 출산율을 경험했고, 싱가포르와 대만도 1명 안팎의 초저출산 상태에 머물러 있다. 한국은 2000년 1.48명에서 2023년 0.721명까지 내려간 뒤 2024년 0.748명으로 소폭 반등했지만, 여전히 여성 한 명이 평균 한 명의 아이도 낳지 않는 수준이다. 대만도 2023년 0.865명, 2024년 0.885명으로 한국과 매우 가까운 초저출산권에 있다.

동아시아 저출산의 공통 구조는 몇 가지로 묶인다. 첫째, 출산이 결혼 안에 강하게 묶여 있다. 결혼이 늦어지거나 줄면 출생도 거의 직접적으로 줄어든다. 둘째, 교육과 노동시장 경쟁이 가족 형성의 비용을 높인다. 아이를 낳는 순간 주거비, 사교육비, 경력단절, 돌봄시간이 한꺼번에 미래 비용으로 계산된다. 셋째, 성평등의 제도화가 생활 속 돌봄 분담까지 충분히 내려오지 못했다. 여성의 교육수준과 노동시장 참여는 높아졌지만, 돌봄과 가사 책임은 여전히 여성에게 더 많이 남아 있다면 출산은 개인에게 너무 비싼 선택이 된다.

이 점에서 한국의 저출산은 예외라기보다 동아시아형 저출산의 가장 압축된 형태에 가깝다. 일본은 더 일찍 시작했고, 대만과 싱가포르는 도시국가적 주거·경쟁 압력이 강하다. 한국은 여기에 수도권 집중, 장시간 노동, 교육경쟁, 혼인 중심 가족제도가 결합하면서 하락 속도가 더 빨라졌다.

유럽 주요국 합계출산율 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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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World Bank SP.DYN.TFRT.IN

프랑스, 스웨덴,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의 합계출산율 추세다. 유럽도 대체수준 2.1에는 크게 못 미친다.

유럽을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프랑스와 스웨덴은 한국·일본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지만, 이들도 대체수준 2.1명에는 미치지 못한다. 2024년 World Bank 기준으로 프랑스는 1.61명, 스웨덴은 1.43명, 독일은 1.36명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각각 1.18명, 1.10명으로 동아시아의 초저출산에 가까운 수준까지 내려와 있다. 유럽이 저출산 문제에서 벗어나 있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다만 유럽의 출생 구조에는 한국과 다른 완충 장치가 있다.

출산율, 비혼 출산, 이민자 출산의 국제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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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World Bank SP.DYN.TFRT.IN; OECD Family Database/Our World in Data; Eurostat DEMO_FACBC

합계출산율은 2024년 또는 최신값, 비혼 출산 비중은 OECD Family Database를 가공한 Our World in Data의 최신값, 외국 출생 모친 출생 비중은 Eurostat 2023년 자료다. 지표 연도가 서로 다르므로 구조 비교용으로 읽어야 한다.

첫 번째 완충 장치는 비혼 출산이다. OECD Family Database를 가공한 자료를 보면 한국과 일본의 비혼 출산 비중은 최신 관측치 기준 3% 안팎에 머문다. 반면 프랑스와 스웨덴은 절반을 넘고, 영국도 50%를 넘는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도 한국·일본보다 훨씬 높다. 이는 “가족이 해체되었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많은 유럽 국가에서는 동거, 사실혼, 비혼 부모가 제도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되고, 출산이 법률혼의 통과의례에만 묶이지 않는다. 혼인이 줄어도 출생이 곧바로 같은 폭으로 줄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번째 완충 장치는 이민자 출산이다. Eurostat의 2023년 모친 출생국별 출생 자료를 보면 EU 전체 출생아의 약 22.9%는 거주국 밖에서 태어난 모친에게서 태어났다. 독일은 31.8%, 스페인은 31.2%, 프랑스는 25.6%, 스웨덴은 29.4%, 이탈리아는 21.8%다. 이민은 단순히 노동력 보충이 아니라 출생 구조에도 영향을 준다. 젊은 연령대 이민자가 유입되고, 그들이 가족을 형성하면 단기적으로 출생아 수 감소를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요인을 출산율 문제의 해결책으로 과장해서는 안 된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비혼 출산 비중도 낮지 않고 외국 출생 모친 출생 비중도 상당하지만, 합계출산율은 여전히 매우 낮다. 프랑스와 스웨덴도 상대적으로 높을 뿐 대체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비혼 출산과 이민자 출산은 출산율 하락을 완충할 수 있지만, 주거비, 청년 고용, 돌봄 비용, 성평등, 가족정책의 질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한국이 유럽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이민을 늘리자”거나 “비혼 출산을 늘리자”가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출산을 결혼, 주거, 안정적 직장, 여성의 돌봄 부담이라는 좁은 통로에만 묶어 두지 않을 수 있는가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져도 아이와 부모가 제도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지, 이주민 가족의 출산과 양육이 지역사회와 교육·돌봄 체계 안에서 안정적으로 연결되는지가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중국을 따로 보아야 한다. 중국은 동아시아 저출산 논의에서 가장 강한 반례다. 국가는 오랫동안 출산을 제한했고, 이제는 반대로 출산을 장려한다. 2016년에는 한 자녀 정책을 폐지하고 두 자녀를 허용했으며, 2021년에는 세 자녀 정책과 지원 조치를 법제화했다. 2025년에는 3세 미만 아동 1인당 연 3,600위안의 전국 단위 육아보조금까지 도입했다. 정책의 방향만 놓고 보면 중국은 이미 제한에서 장려로 급격히 돌아섰다.

그러나 인구는 정책 구호보다 느리고, 혼인과 출산은 행정명령보다 더 완강하다. 중국 국가통계국 공보에 따르면 중국의 연말 총인구는 2022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고, 2025년에는 14억 489만 명으로 전년보다 339만 명 줄었다. 출생아 수는 2016년 1,786만 명에서 2025년 792만 명으로 줄었고, 조출생률은 같은 기간 12.95‰에서 5.63‰로 낮아졌다. 민정부 혼인등록 통계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2013년 1,346.9만 쌍이던 혼인등록은 2024년 610.6만 쌍까지 내려왔다. 2023년에 코로나 이후 이연 혼인의 영향으로 잠시 반등했지만, 장기 추세를 바꾸지는 못했다.

중국의 인구 감소와 혼인·출생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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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국 국가통계국 2013·2016·2023·2024·2025 국민경제사회발전 통계공보, 민정부 혼인등록 통계, World Bank SP.DYN.TFRT.IN

각 지표는 2013년 값을 100으로 환산했다. 2025년 혼인등록과 합계출산율은 아직 같은 기준의 연간 확정치가 없어 표시하지 않았다.

중국 사례가 중요한 이유는 “정부가 마음먹으면 결혼과 출산도 다시 늘릴 수 있다”는 생각을 흔들기 때문이다. 산아제한은 행정적으로 비교적 분명한 정책 대상이 있었다. 허용 자녀 수를 정하고, 초과 출산에 벌금을 부과하고, 호적·직장·지역 행정망을 통해 규칙을 집행할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은 인권 침해와 성비 불균형, 무등록 아동, 작은 가족 규범의 고착이라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럼에도 출산을 ‘줄이는’ 정책은 금지와 제재를 통해 일정 부분 관철될 수 있었다.

출산장려는 전혀 다른 문제다. 국가는 아이를 낳으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청년에게 결혼의 신뢰, 안정된 일자리, 감당 가능한 주거비, 경력단절 없는 돌봄, 교육비 부담의 완화를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 출산은 한 번의 행위가 아니라 20년 이상 이어지는 생애 선택이다. 특히 중국처럼 오랫동안 한 자녀 가족이 정상으로 자리 잡은 사회에서는 “이제 더 낳아도 된다”는 허용만으로 가족 규범이 쉽게 되돌아오지 않는다. 여성의 교육과 노동시장 참여가 높아지고, 도시 주거비와 교육비가 커지고, 청년층의 미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는 결혼을 강하게 권유하거나 출산을 애국적 의무처럼 말할수록 오히려 반발과 거리두기가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은 한국에 두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 출산은 통제할 수 있는 행정 목표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 삶을 걸고 선택하는 사회적 결과다. 둘째, 산아제한 정책의 성공 방식은 출산장려 정책으로 그대로 뒤집어 쓸 수 없다. 줄이는 정책은 선택지를 닫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지만, 늘리는 정책은 선택지를 넓히고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한국의 저출산 정책도 이 차이를 놓치면 숫자를 향한 조급함만 커지고, 청년의 실제 삶을 바꾸는 데에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저출산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문제는 낮은 출산율 그 자체보다 출산을 가능하게 하는 통로가 너무 좁다는 데 있다. 유럽은 그 통로가 상대적으로 넓지만, 그럼에도 출산율 하락을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 중국은 국가가 강하게 개입해도 결혼과 출산의 생활조건을 바꾸지 못하면 반등이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래서 국제 비교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저출산 정책은 출산율 숫자를 올리는 기술이 아니라, 결혼 여부, 국적, 노동시장 지위, 가족 형태와 무관하게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넓히는 일이어야 한다.